평화 협력 시대, 한강의 비전

정림학생건축상 2020

“‘백사장’과 ‘하천’이 부의 상징 '한강변 아파트'로 변신”, 한강개발 30년을 맞이하여 한 뉴스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내용을 읽지 않고도 어떤 내용이 실렸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70년대를 살아온 장년층은 물론이고, 젊은 청년들도 ‘한강의 기적’의 실체는 모를지라도 기사가 뜻하는 바는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그만큼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은 부정될 수 없는 ‘FACT’의 위상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기사의 제목이 제대로 된 것일까? ‘한강’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말 중에 ‘한강의 기적’ 외에 ‘민족의 젖줄’이 있다. 한강이 민족의 젖줄이라는 표현은 한강이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기사는 ‘민족의 젖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민족의 젖줄’로서의 ‘한강’과 ‘한강의 기적’ 속의 ‘한강’은 다른 한강일까?
‘민족의 젖줄’로서의 한강은 한반도의 중앙을 가로지르면서 많은 지류를 통해 하나가 되는 물길로 내륙 물류의 중심이었을 뿐 아니라, 한강 하구를 통해 삼남의 물류가 모였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다. 이에 반해 ‘한강의 기적’은 한강변의 변화가 산업화의 결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고급 주거지로 변모한 한강변 풍경에 어울리는 별칭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강이 우리의 산업화에 기여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바로 이 부분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강변에는 산업화에 기여한 시설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기 때문이다. 여의도 아래쪽에 화력발전소가 하나 있지만, 1930년대 세워진 화력발전소는 산업시설을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한강변에는 산업시설이 전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개항 이후 만초천(현 원효대교 북단)과 한강이 만나는 곳에 처음 근대적 의미의 공장이 들어서고, 대한제국 시기까지 수운이 편리했던 영등포 일대에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지만, 일제 강점 후 산업화를 위한 한강의 역할은 거기에서 멈췄다.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킨 후 인천과 영등포 사이가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공업지대로 성장했지만, 군수산업체의 생산물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륙에서 일본이 저지른 전쟁을 위한 것이었다. 자연히 한강의 끝에서 일어났던 변화가 물길을 통해 서울까지 이어지지 못하였다.
한강이 나누어진 것은 6.25전쟁을 통해서였다. 서해에 면한 한강하구는 한강이 예성강과 임진강과 만나는 곳이다. 분단 전에는 예성강을 따라 오르다 보면 개성에 다다를 수 있고, 임진강을 따라 오르다 보면 태봉의 도읍인 철원으로 닿을 수 있었다. 이 물길이 분단과 전쟁으로 막힌 것이다.
한강은 남북한의 단절, 분단으로 인하여 강으로서의 생명력을 잃었다. 한강의 서쪽 끝이 군이 관리하는 ‘한강하구 중립구역’이 되면서 물류의 기능이 상실되었고, 한강변은 포구와 산업시설이 아닌 물놀이 공간으로 바뀌고 말았다. 1960년대 말 강남 개발을 앞두고 김수근의 종합기술 개발공사에 의해 ‘한강 연안개발계획’이 마련되었는데, 계획의 핵심은 오늘날 강남으로 불리는 구간의 상류와 하류에 보를 설치하여 한강을 호수화한 후 한강변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한강에 ‘보’를 설치했다는 사실은 1.21사태로 상징되는 냉전의 정점에서 배의 통행을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민족의 젖줄’이라는 기능을 정부가 완전히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한강이 산업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구조적으로 막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한강을 통해 서해로 나아갈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인 운하’계획이 수립되기도 했지만, 현실성 없는 계획이었다. 이후 진행된 한강개발계획은 ‘산업’이 아닌 ‘치수(治水)’차원에서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공유수면을 매립하여 만들어진 동부이촌동과 반포 그리고 잠실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이후 한강에 즐비했던 나루터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강남과 강북을 잇는 다리가 건설되었으며, ‘산업과 물류’가 거세된 자리에 ‘아파트’가 자리 잡았다. 오늘날 서울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은 한강변 아파트 풍경은 산업화 시대에 산업이 사라지게 한 분단과 냉전의 산물인 것이다.
 
최근 남북 관계 개선이 이전과는 다르게 가시화되면서 ‘통일’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동시에 통일 담론이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DMZ의 평화지대화와 개발 이슈, 그리고 남북 산업벨트 구성 등 다양한 청사진이 거론된다. 그러나 일반의 희망과는 달리 ‘통일’의 로드맵은 시간을 특정할 수 없을 뿐 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분단이 땅에 심어놓은 깊은 상처는 평화통일시대의 청사진을 구현하는데 큰 장애가 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한강이다. 통일은 시기를 예측할 수 없어 구체적인 청사진의 로드맵을 그리는 것이 어렵지만, 남과 북 사이에 긴장이 완화되어 평화 협력 시대가 되어 중립구역이 아닌 공동 이용 수역으로 통행이 보장되면, 통일 이전이라도 한강 하구는 예성강을 통해 개성으로 서해를 거쳐 평양과 신의주로 연결될 거점이 될 것이다. 오늘의 우리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전혀 다른 한강을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을 앞두고 있다.
 
평화 협력 시대에 우리의 한강은 그리고 서울은 어떤 비전을 가질 수 있을까?‘역사는 더 오래 기억하는 사람의 것, 역사는 함께 기억할 때 완성된다’고 한다.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역사는 함께 만들어갈 때 우리 것’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역사를 담을 한강에 대한 지혜를 함께 모으는 자리로서 정림학생건축상이 중요한 도약점을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연합뉴스 「백사장’과 ‘하천’이 부의 상징 '한강변 아파트'로 변신」 (2016.04.17.)

 

심사위원

안창모 

서울대학교에서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한국전쟁을 전후한 한국 건축의 변화에 관한 연구」와 「건축가 박동진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콜롬비아대학교와 일본 동경대학에서 객원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경기대 대학원 건축 설계학과 교수로 한국 근대 건축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에는 『한국현대건축50년』(1996), 『덕수궁-시대의 운명을 안고 제국의 중심에 서다』(2009), 『북한문화, 둘이면서 하나인 문화』(2008, 공저), 『평양건축가이드북』(2012, 공저, 독일어, 영어판) 등이 있고 국가상징거리조성종합계획, 구서울역사복원과 문화공간화사업에 참여했다.
 

조민석 

조민석은 2003년 서울에서 매스스터디스 건축사무소를 설립했다. 사회 문화 및 도시 연구를 통해 새로운 건축적 담론을 제시하는 그의 대표작으로는 픽셀 하우스, 실종된 매트릭스, 다발 매트릭스, 상하이 엑스포 2010: 한국관, 다음 스페이스 닷 원, 티스톤/이니스프리, 사우스케이프, 돔-이노, 대전대학교 기숙사등을 꼽을 수 있다. 현재는 현상설계 당선작인 서울 시네마테크(몽타주 4:5), 당인리 문화공간(당인리 포디움과 프롬나드)과 양동구역 보행로 조성사업(소월숲)이 진행중이고, 최근 연희 혁신 거점 현상설계에 당선되었다. 또한, 2011년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전시를 공동 기획했고,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겸 큐레이터로 황금사자상 수상하였다. 2014년 삼성 플라토 미술관에서 《매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 개인전 등 다수의 전시와 강의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체일정

  • 참가 신청: 2019.9.17(화) ~ 2020.1.13(월)
  • 심포지움: 2019.9.27(금) 오후 5시 정림건축 9층 김정철홀
  • 주제 설명회: 2019.11.23(토) 오후 5시 정림건축 9층 김정철홀
  • 과제 제출: 2020.1.20(월) ~ 2020.2.3(월)
  • 과제 심사 결과 발표: 2020.2.21(금)
  • 최종 공개 심사: 2020.3.21(토)
  • 최종 결과 발표 및 공람: 2020.3.30(월)
*2020년에는 과제 심사 후 15팀을 선발하여, 최종 공개 심사를 진행합니다.
 

1차 과제

프리젠테이션 출력물 우편 접수

- A4 사이즈 20매 이내, 제본하지 않은 출력물로 2부 인쇄하여 제출
- 스테이플러 또는 클립 등으로 문서 왼쪽 상단에 고정
- 2월 3일 오후 7시까지 도착하는 제출물에 한해서만 접수 완료
(우체국 등기만 접수받습니다. 택배, 퀵배송, 방문접수는 받지 않습니다)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 8길 19 정림건축문화재단
 (우편번호 03044)
- 서류봉투에 넣어서 제출 (박스 포장 금지)

디지털 파일 이메일 접수

 - 제출한 출력물과 동일한 20매 이내의 PPT / PDF 파일
 - 2월 3일 (당일 자정) 도착하는 제출물에 한해서만 접수 완료
 - 이메일 award@junglim.org  

 ※ 우편, 이메일 모두 제출해야 과제 접수가 완료됩니다.
 

최종 공개 심사

- 1차 심사 통해 선정된 팀은 최종 공개 심사에 진출합니다.
- 1팀 당 7분 이내의 발표 후 심사위원의 질의응답을 거쳐 대상 5팀과 입선팀이 가려집니다.
- 윈도우에서 구현 가능한 PPT 혹은 PDF 파일 그 외 효율적인 프레젠테이션에 필요한 방법도 활용 가능
(동영상, 스케치업 등) 단, 모형은 받지 않습니다.
 
 
 

유의 사항 및 문의

유의사항

  • 모든 제출자료는 참가번호만 명시해야 합니다. (학교 등 개인정보 명시 금지)

  • 주요 일시 및 장소가 변경되는 경우 이곳 웹사이트에 사전 공지되므로 수시로 확인바랍니다.

  • 입금 및 과제 제출 확인은 웹사이트 로그인 후 진행단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등록 및 문의

www.junglimaward.com
03044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8길 19
TEL_02 3210 4992 hyun@junglim.org